[임팩트 시대가 온다] 자본의 인내가 가져오는 변화 / 김정태

관리자
2021-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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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태 ㅣ 엠와이소셜컴퍼니(MYSC) 대표


2020년 읽은 첫번째 책은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였습니다. 당대 가장 영향력 있는 신경학자였던 저자는 당시 학계에서 환자를 정상과 비정상으로 섣부르게 나누는 관행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후천적으로 자폐증을 갖게 된 ‘호세’란 아이를 소개하며 올리버 색스는 자폐증 판단을 유보하는 대신 충분히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번은 요양병원 밖, 따사로운 햇살이 넘쳐나는 정원으로 호세를 데려갔습니다. 8살 때 이후로 스스로 밖으로 나간 적이 없던 호세의 놀라운 행동을 그는 계속 묘사합니다. 민들레를 한 손으로 꼭 쥔 호세는 무릎을 꿇고 그림을 그렸는데 “묘사가 세밀했고 식물학적으로도 정확”했으며 “중세의 식물학이나 약초학 책에 실려 있는 유명한 사생화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충분히 긴 시간을 같이 보낸 후 올리버 색스는 호세를 “독자적인 스타일의 자연주의자, 자연파 화가”였다고 회고합니다. 짧은 시간 호세를 지켜본 누군가는 그를 자폐증 환자라고 단정했고,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올리버 색스는 호세가 가진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충분한 시간과 관심을 가질 수 있다면, 우리의 세계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호세’의 이야기에 빠져들던 지난해 성탄절 전날에 기쁜 소식이 있었습니다. 2016년 8월부터 3년간 진행되었던 아시아 최초이자 국내 최초의 ‘서울특별시 아동복지시설 아동교육 사회성과보상사업’(SIB, 사회성과연계채권)이 마무리되면서 투자 원금과 인센티브가 바로 이날 입금되었기 때문입니다. 투자자에게 투자금이 목적대로 성과를 내고 일정한 수익과 함께 돌아오는 것을 ‘엑시트’(exit)라 하는데, 투자자에게는 매우 기쁜 날이기도 합니다. 이날이 저의 7년 동안의 임팩트투자 경력 중 개인적으로 가장 보람되었던 것은 투자금 외 원금의 약 25%에 이르는 인센티브가 포함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인내자본’이라 불리는 임팩트투자만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투자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깊게 돌아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회성과보상사업은 특정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부의 예산 대신 민간의 선투자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사업을 의미합니다. 사업 목적의 달성 여부에 따라 투자자는 정부가 절감한 예산 중에서 원금 외 추가로 인센티브를 기대할 수 있고, 성과가 미흡할 때에는 원금 손실도 가능합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11개국 이상 140개 이상의 사회성과보상사업이 진행되며 치매, 비만, 우울증, 취업, 재범, 자살, 교육 등 주로 예방적 활동을 통한 효과가 높은 분야에서 실행되고 있습니다.


서울시 사업은 ‘경계선지능 아동’의 인지기능과 사회성을 향상시키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지적장애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의 ‘경계선지능’은 ‘장애’로 분류되지 않아 복지나 정책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습니다. 성인이 된 뒤 급속도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며 지적장애로 악화되어 개인과 사회적 비용이 높아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사후적 사회적 비용을 방지하기 위해 예방적으로 인지기능과 사회성의 향상을 돕는 전문가들과 양육 멘토들이 투입되었습니다. 참여하는 수혜 아동의 인지기능 및 사회성이 객관적 지표를 통해 개선되는 비율이 33%일 때부터 투자 인센티브가 발생하는데 놀랍게도 이번 사업의 성과 비율은 52.7%였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성과의 밑바탕에는 변화가 일어나기까지 주어진 충분히 시간이 있었습니다. 참여했던 한 아동은 “멘토 선생님과 함께하면서 저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었고, 선생님은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았어요”라고 후기를 남겼고 양육 멘토는 “우리가 함께할 수 있도록 3년이라는 충분한 시간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회성과보상사업이나 앞서 ‘호세’의 사례처럼 변화가 필요한 곳에는 긴 호흡과 충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금융 역시 단기적인 성과에 집중하지 않고 장기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인내자본이 되어야 합니다. 임팩트투자는 우리 사회의 인내자본입니다. 인내자본이 많아질수록 분열과 편견을 넘어 올리버 색스가 꿈꿔왔던 진정한 변화에 더욱 가까워지지 않을까요?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23680.html#csidx3f084871c7a8716aaf83698f557986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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